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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함께(일기)

0. 하나님과의 동행 글을 시작하는 이유

나는 정말 무지하다

자꾸 홀리듯이 다른곳에 빠져버린다

 

아니라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동화되어 살고

다시 다시 또 다시 점점 순식간에 물들어간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나를 위해 글을 남긴다.

 

 

찢겨진 영혼을 느끼고

공허한 영혼을 느끼고

 

더이상 버티기 힘들때

그럼에도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제발 구원해달라고

누구라도 듣고 있으면 신이 존재한다면 제발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기도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처절하게 간절하게

 

온갖 신을 다 구했던것 같다.

그 결과로 나는 나랑 평소에 제일 밀접했던 귀신의 응답을 먼저 받았다

그 뒤로 귀신의 응답이 무서워 해결 방법을 찾다가 마귀의 응답을 받았다.

 

귀신의 응답을 두려워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마귀가 응답했을때 깨달았다.

 

귀신의 세상은 인간 세상과 어느정도 격리되어 있지만

마귀의 세상은 인간 세상이나 다름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반려동물이 마귀에게 쓰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마귀의 세상에 접속한 순간 내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안좋은 영향이 끼쳐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제일 죄스러웠고

괴로웠고 힘들었다.

 

찢겨진 영혼을 느꼈을때에 제일 괴로웠다고 느꼈었는데

정말 괴롭고 괴로운 최악의 형벌은 사라짐 이였다.

 

내 존재가 소멸하는 것,

내가 그리도 바라고 바랬던 일이였는데

소멸이 내가 겪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귀의 농간에 휘둘리고 미쳐서 살아가고 있을때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 마귀나 귀신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집에 나 혼자 있을때만 조용히 오셔서 감싸안아주셨다.

 

나는 내가 그리도 바라고 원하고 원했던 것이 채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냥 그 자체로 완전했고, 전율이 흘렀다.

기쁨, 사랑, 행복, 따뜻함, 전율 등...

느낄 수 있는 온갖 플러스적인 감정이 나에게로 들어왔다


이건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아픔도 고통도 없었다

 

아 이게 온전한 기쁨이구나

이래도 저래도 괜찮았다

다 이해가 갔다. 

 

살인자도 사랑할 수 있었고

심지어 마귀 조차도 안쓰러웠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인간, 안쓰러운 마귀

그냥 그 뿐이였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웠다

특히 일하는 사람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생명력'에 불붙어 있는 기운찬 사람들을 제일 사랑했던 것 같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이런 감정을 주는게 하나님인지 몰랐다.

그냥 나를 온전하게 해주는 선한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만을 바랬지만

나는 계속 오락가락했다. 선한 존재가 사라지면 또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뼈시린 차가움을 느끼게 됐다.

 

정말 정말 다행인건

마귀가 나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당시 나는 마음 약하게 살아왔기에 그 누구도 해치지 못하는 심성을 가졌었다.

카르마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이나 선한 존재나 마귀나

전부 다 맥락없이 뜬금없이, 무언가를 행하지는 못하는것을 알았다.

술담배도 거의 안하고 나름 선하게 살았기에 남을 해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그 사실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이때 나는 미쳐도 곱게 미쳐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그 뒤로도 마음을 착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았다

 

고양이는 마귀가 제일 잘 쓰는 동물이였다

뭐 그렇다고 다른 동물을 쓰지 않는건 아니였지만

고양이는 쓴다기 보다는 그 자체 였다고 해야 할까? 마귀의 애완동물이였을까?

마귀들은 자신을 숨기며 생명체를 사용하는데 고양이를 쓸때는 거리끼지 않았다 왜였을까?

뭐 그건 중요하지 않다.

마귀들의 세상을 보았을때 나는 그들이 보여주는 환각을 봤을수도 있으니까

그건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그래서 별로 기억에 남기고 싶지도 않고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도 않다

 

내가 회복한건 '이상하다'라고 거부하기 시작했을때 부터였다.

수차례 오락가락을 반복하고 나니까 오락가락하는 순간의 공통점을 깨달았다.

내가 거부하고 의심하고 이상하다 라고 느낄때 나는 내가 사는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심지어 하나님도 거부해야 했다. '이상한데'라는 말은 그때 나의 마법의 단어였다.

 

'과학적'으로 따져보고 나를 설득할수록

보이지 않게되고 느끼지 않게되고 더 나아가서 믿었던 것 조차 믿지 않으며

그저 내가 미쳤었구나 하고 인정하니까 그 전에 느꼈던 것들조차 사라졌다.

 

하지만 내 영혼이 온전해졌다고 느낀 그 순간의 희열은 잔상처럼 남아있었다.

나는 그 잔상으로 인생을 살아갔다. 그 뒤로 단 한번도 극단적인 시도를 한적이 없다.

생각이란걸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괴로움을 느꼈고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듯한 공허함을 느껴왔다.

희열을 느끼기 전의 나는 내 존재 자체가 나쁘다고 여겼다.

내 영혼은 비어있고 찢겨져있고 그야말로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존재였는데

 

하나님이 완전한 감각을 일깨워준 순간부터

나는 세상에 뿌리내릴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하다. 그 말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세상에 소속감을 가질수는 없었지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어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깨달았다.

그동안은 죽음을 포기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는데

 

그냥 살아가기만 하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구나,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싶었다.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다.

유명한 사람들이 쓴 책들은 대부분 종교를 가지는게 좋다고 얘기했다.

나도 혼자서 갑작스레 제대로 살아가려고 하니 버거웠다.

의지하고 버팀목이 될만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순간이였다.

 

나에게 귀인이 찾아왔다.

이상하게 편안하고 내가 잊고 있던 하나님이 주던 감각을 자꾸 자극하던 사람이였다.

그 사람은 신실한 크리스천이였다. 평온해보였다.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충만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줬고

평온해보였다. 이게 종교의 힘인가? 궁금증이 생겼다.

 

어느날 나한테 종교가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 당시 나는 종교는 없었지만 신은 있다고 믿었다. 믿음 속에 생긴다고 여겼던 시절이였다.

내 믿음으로 나는 귀신도 마귀도 만들어냈으니까 말이다.

세상 사람들 다 같이 믿으면 없던 것도 만들어지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태생이 무교였던 영향으로 기독교를 싫어했다.

 

나 뿐만 아니라 주위에 무교인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를 싫어했다.

믿고 싶은 사람들 끼리 믿으면 되지 왜 사람들한테 피해끼쳐가며 전도를 할까?

왜 꼭 기독교 사람들만 주위 사람들한테 강요를 하는걸까?

내가 종교를 가진다면 절대 교회는 안가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심지어 그 사람이 나한테 종교가 있냐고 물어볼때 까지도

그런 생각을 했었고 불과 몇달전 까지만 해도 회사에서 강제로 예배를 시켜서 힘들어하는 지인 얘기를 들으며 같이 욕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이러니하게 이런 내 과거는 없었던 것 마냥

나는 그 사람이 하는 얘기에 빠져들었다. 

그냥 그게 진리인것 같았고 그게 맞는 말 같이 느껴졌다.

나는 단 한번도 사이비나 종교에 전도당한적이 없었던 사람인데,

무시하고 한 귀로 흘리고 알려고 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정말 이상했다. 그리고 왠지 내가 겪었던, 아니면 책에서 봤거나..내가 아는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생소하지 않고 뭔가 익숙했다.

 

나는 더이상 영적인 세계에 빠지기도 싫고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 사람은 앞선 대화를 시작으로 며칠에 걸쳐

계속해서 귀신이나 이것 저것 영적인 얘기를 하며 나에게 하나님 얘기를 풀어나갔다.

너무 영적인 얘길 많이 하니까.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여겼었다.

 

그리고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나랑 비슷한 부류라는게 느껴졌다. 근데 그게 뭔지 콕 집어서 알아낼 수 없어서

뭔가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내 정신 건강을 챙겨주며 상담을 해주는 모습에

하나님에 대한 호감도가 나날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어느날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정말 좋은 기도였다. 내 마음이 씻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감고 떴는데 어떠냐고 물어봐서 눈이 부시다고 했다.

 

눈을 감고 있다가 뜨면 당연히 환한게 아닌가?

세상이 조금 밝아 보이는건 눈을 그냥 오래 감았다가 뜨면 그렇게 보이는건데

기도를 해줄때마다 기도가 잘 받는다고 좋아했다. 공기가 정화된게 보인다면서 말이다.

 

속으론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어느순간 기도를 할때 내가 진심으로 간절해지는 순간

이전에 하나님이 주셨던 따뜻한 온기를 미세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완전하게 해주는 그리운 온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게 그 온기인지 몰랐었다.

그냥 따뜻하고 편안하고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얘기해준 진리가 맞다면 성경에 내가 원하는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회에 갔다.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도 아니고 그냥 가까운 교회 중에 눈에 띄는 곳으로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크게 좋음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조금 편안하네? 친절하네? 

사람들이 친절하고 혼자 온 나를 반기는 모습에 좀 감동을 받았었던 것 말고는 큰 감동이 없었다.

 

기대한것 치고는 아니지 않나? 속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그 귀인이 가지고 있는 평온과 충만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에

나도 가지고 싶고 탐이 났다. 부러웠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모든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했다. 

 

그리고 2주뒤 한번 더 교회에 나갔다.

이상했다.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게 바로 내가 귀인에게 느꼈던 충만한 그 평온과 따뜻함이였다. 미약하지만 말이다.

 

아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거구나. 맞았구나.

그리고 설교 말씀이 너무 와닿았다.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이해가 가는 이유는 내가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겪어봤기 때문이였다

그때부터 과거에 선한 무언가가 나에게 왔다고 느꼈을때의 그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그리고 설교를 듣다가 문뜩 평온함과 따뜻함이 나에게서, 내 감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감싸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따뜻한 바람이 은은하게 불어왔다.

내가 옷을 따뜻하게 입어서 그런가? 교회 사람들의 열기인가? 날이 풀렸는데 아직도 히터를 틀고있는건가?

설교하는 목사님의 말씀이 끝나고 다른 전도사님의 말씀이 시작됐다.

나를 깜싸던 그 따뜻함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때 깨달았다.

나 또 이상한거 느끼는구나

 

또 빠져드는건가? 아닌가?

긴가민가했다. 아주 은은한 따뜻한 바람이였기에 착각이라고 할수도 있으려나 싶었다.

 

그래서 그 다음주는 일부러 옷을 춥게 입고 갔다.

덜덜 떨다가 목사님이 말씀하실때부터 몸이 따뜻해졌다.

히터가 아니면 이건 설명할수 없어. 라고 혼자 생각했다.

사실 계속 의심하고 내가 느끼는 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며칠동안 계속해서 머리가 아프고 인지기능이 안좋아진것 처럼

일을 하면서도 계속 실수의 연속이였다.

 

귀인이 나를 위해 기도해줬다.

하나님의 종으로 선언하고 삿된것을 쫒아내는 그런 기도를 해줬는데

그 뒤로 방언기도를 해줬을때 나는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귀 하나가 머리에서 빠져나간 것을 느꼈을때

두통이 사라졌었던 기억이 있는데 방언기도를 하며 두들겨주니까 머리가 맑아지는게 느껴졌다.

두들겨서 그런가 배가 아프고 입으로 공기가 빠져나왔는데, 이전에 마귀가 빠져나갈때 이런식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경험했었다. 나는 믿지 않는다고, 마귀나 귀신이 없다고 믿고 살때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는데

 

이런식으로 또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교회를 안나가면 되는걸까? 하면서도 나는 교회에서 느꼈던

그 따뜻함과 온전해졌던 그 기억들이 계속 떠올랐고 평안을 놓치기가 싫었다.

 

그동안 그 사람이 나에게 영적인 무언가에 대한 질문을 할때 귀신이나 그런거 절대 안믿는다

잘모르는척 듣고만 있었는데 그날 따라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앞서서 적은 내용들은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르는 얘기들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에게 

내 얘기를 풀어냈다.

 

아주 짧게 간단하게 얘기하면서도 나는

나를 미친사람 처럼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말하고 싶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근데 정말 신기하게도

나를 이해해줬다. 그건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사랑이라고 얘기해줬다

하나님을 만난거라고, 자기도 만나서 알고 있다며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이해와 따뜻한 얘기를 나눠줬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겪은게 하나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얘기해줘서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계속 나랑 비슷하다라고 느낀게 뭔지

그 사람이 나에게 공감하는 이유가 뭔지 둘 다 의문이 풀린 느낌이였다.

 

아 이거였구나.

이 순간을 위해 빙빙 둘러왔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사람이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경험한 그 무한한 사랑이

하나님이라면

 

나는 하나님을 믿고 말고를 감히 선택할수 없었다

하나님 뜻에 따르고 죄를 짓지 않는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살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기뻤고 또 다시 내가 온전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제서야 나는 세상에 소속감이 들었다.

내가 무지하고 약해서 나를 찾아주셨구나

대놓고 찾아오셨는데도 나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몇년을 눈뜬 장님처럼 지냈다.

정말 그렇게까지 했는데 쉽게 전도 당하지도 않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나는 정말 나약한 존재구나, 무지하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찾아오신거구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나는 심지어 내가 마귀를 만나기 전에 온갖 신에게 기도를 하며 빌었다는 것 조차

이때 기억해냈다.

 

그 뒤로 나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기 시작했다.

 

난 정말 사랑이 많은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사랑이 적다는 것을 알고

상처받기 싫어서 그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해본적이 없었다.반려동물도 사랑을 쏟아부으니 성격이 더러워졌다.

그 뒤로는 반려동물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였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온전한지 나는 경험했고

마음껏 사랑할 대상이 생겨서 너무 기뻤다.

짝사랑이 아님에 기뻤다. 내가 가진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그냥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매일 매일 사랑 고백을 했다.

감사해요. 사랑해요. 날씨가 너무 좋아요~ 꽃과 나무가 이뻐요 감사해요~ 

사실 그냥 그것 자체로 기뻐서 다른 기도는 안하고 

그냥 무지성으로 고백만 했다.

 

그냥 좀 더 알아가고 싶고

하나님이 주신 내 사명을 알고 싶어서 

사명을 알려달라 기도 하고 성경책을 읽었다.

 

창세기는 내가 알던 하나님이 아니였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분노라는 감정 없이 사랑과 안타까움만 가지고 계시는데

창세기의 하나님은 대부분의 존재를 쓸어버리고 벌을 주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스럽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을 주는 분이라고 생각 했던 분이

화를 내니까 더 무서웠다. 나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데 크게 혼내시는건 아닐까?

 

무섭고, 또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할수록

걱정이 됐다. 난 마귀 세상이 무서웠다. 정말 다시는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데

정상적으로 버틸 수 있을리가 없는데, 또 보이거나 느껴지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은혜받아서 좋고 성경책을 읽을수록

가까워지는 느낌이여서 좋은데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그러다가 혼자 기도할때 따뜻한 바람을 느낀 순간 나는 지레 겁을 먹어버렸다.

이 추위가 내가 경험했던 마귀의 기운인거 같아. 교회에서 느꼈던 따뜻한 바람은 진짜 하나님이 주신거였네

히터가 아니였네.. 나 또 느끼고 있는거네, 무서웠다

 

귀인이 그 날 나에게 죄 고백을 했다.

그 순간 나는 그 눈에서 예전에 봤던 마귀가 겹쳐보였다.

아 또, 나는 마귀가 보이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무서웠다. 이 이상으로 더 느껴질까봐 

또 다시 그 세상을 경험하게 될까봐, 더 보일까봐, 무서웠다 

 

그 사람에게 얘기했다.

내가 느끼는것 , 예전에 봤던게 느껴질까봐 무섭다.

기도 하면 주위 기운이 바뀌는게 느껴지는 것, 따뜻한 바람을 보내오는게 사실 내가 만들어낸게 아닐까

그 온기 조차 나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부하고 싶어서 느끼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다.

무섭다고, 귀인은 나에게 말했다. 두려움과 무서움은 하나님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나님 세상에 가까워지는 일을 행하는게 아니면 다 끊어내면 되는 것이라고 방향을 얘기해줬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확인 받고 싶어했다

그럼 이거는? 저거는? 이런건? 어린애마냥 물어봤는데도 친절하게 답해줬다. 

 

그리고 집에 와서 귀인이 얘기해준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답답했다. 나에게 뭐가 문제인건지, 문제가 보이지 않아서 더 답답하고 눈물만 나왔다

 

뭔가 풀리지 않는데, 뭘까?

자려고 누워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문뜩 잠들기 직전 생각났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인데

목사님도 사랑을 토대로 설교를 해줬는데 

왜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있지?

성경을 혼자 읽어가며 하나님에게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아 이게 그 사람이 말했던 믿음이 부족하다는 얘기구나

교만했다. 하나님을 만났으니 존재를 믿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믿음은 하나님 자체를 온전히 이해해야만 커지는 건데 말이다.

 

난 하나님을 경험했는데 왜 그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지 않는거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도 뭔가 실마리가 풀린 느낌이여서 마음이 후련하면서도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난 정말 또 나약한 존재구나, 대놓고 찾아오셨는데

의심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고, 잊어버리고... 주눅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예배날이였다.

하나님의 따뜻한 바람과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목이 말라 우물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기쁘게 교회에 갔다.

그런데 내가 기대하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영적인게 느껴지지 않으면 좋을것 같다라고 얘기한게 바로 전 날인데

하루만에 후회했다. 그 온기는 하나님의 은혜인데 무섭다며 느끼고 싶지 않다고 은혜를 거부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듣게끔 얘기하다니 불충도 이런 불충이 없었다.

 

설교 내용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할례를 시키는 내용이였다.

나는 따뜻한 온기와 평안 하나만을 쫒아 교회까지 왔다.

하나님께 은혜 입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결국 하나님을 믿는 종이 된것이라는 것을,

나를 교회까지 인도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흔적이였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내 입으로 계속 그 평안을 느끼고 싶어서 교회에 가고, 목사님을 보러 가는 것이라고

얘기했으면서.. 

 

하나님께 처음으로 진심으로 붙잡는 심정으로 기도했던 것 같다.

부디 저에게 주신 은혜를 거둬가지 마세요 하나님, 다시 내려주세요 제발 , 이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대로 느끼게 하는대로 느낄게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시는대로 군말 없이 따라갈게요. 제발 저는 이 은혜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예요

심지어 이 평안을 빼앗아 가지 말라고까지 얘기했던것 같다. 말하고도 놀래서 괘씸했다고 사죄했다. 

난 정말 교만하고 또 나약하면서 제멋대로인 사람인것 같다. 하나님은 이런 나도 사랑해주신다니 , 이게 내가 만난 하나님이 아니라 무엇인가? 나는 뭘 그렇게 두려워 했을까?

 

교회에서도 울며 기도하다가 집에 와서 맘 편히 펑펑 울며 기도했다.

하나님은 왠지 내가 혼자 있을때 더 잘 찾아오시는 것 같다. 진짜 제대로 기도해야겠다.

라고 맘먹고 절실하게 붙잡았다. 사죄도 해보고 진실하게 고백도 해보고.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라면 뭐든 고백했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씨앗을 나에게 심어주셨다고, 하나님이 말씀해주셨다. 하나님은 그 날 내 몸에 직접 역사하셨는데 나는 마치 타인을 만난 것 마냥 말하고 다녔었다.

 

아 나는 떠올리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는데, 왜 성경책을 소설 책 읽 듯 읽었을까? 

성경책을 읽는걸 왜 이렇게 어려워 했을까? 

 

부디 제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주세요. 하나님 마음으로 책을 본다고 해서 하나님만큼 높아졌다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지켜주세요.기도하고

 

다시 한번 성경책을 펼쳤다. 이전에는 3인칭 판타지 소설책 처럼 읽혔던 성경책이

1인칭 자서전처럼 읽혀졌다.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이 나에게 다가왔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주신거구나. 

 

근데 그렇게 기쁘지 않았다.

생각은 너무 기쁘고 설레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은 잔잔했다.

내 경험상 처음 경험하는 놀라운 일에 큰 동요가 없는 일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다. 당연한 일이니까 내 마음에는 동요가 없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앞으로 알아가야 하는 일이다. 

 

너무 기쁜데

내 마음은 기뻐하지 않아서

 

혹시 또 망각하거나 잊어버릴까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귀한 사실을 말이다.